바퀴벌레 나왔다. 근 3년만에 마주한 바퀴벌레는 나에게 큰 절망스러움을 안겨주었다. 언니가 외박 할 때 마다 바퀴벌레 나오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으로 밤을 지내곤 했는데 거짓말처럼 언니의 외박 날 밤 화장실에서 나온 나를 향해 천장에서 까꿍했다.
부엌 상부장에 스프레이가 있는데 바퀴도 자꾸 상부장 쪽으로 기어가서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다가 천장과 상부장 틈으로 들어 가려는걸 보고 진짜 참을 수 없어서 미친듯이 뛰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스프레이를 꺼냈다.
다행히 바퀴도 다시 천장 가운데로 와주어서(?) 바람막이 입고 고무장갑 끼고 숨 참은 채로 하나 둘 셋 하고 스프레이를 쐈다. 스프레이의 위력은 역시 대단해. 싱크대로 추락한 바퀴를 확인사살 차 두어번 더 스프레이 뿌려주고 지호에게 페이스타임을 걸었다. 통화하는 것 만으로도 혼자인 기분이 들지 않아 한결 나아진 심신으로 이제 뒤처리만 남겨둔 상태였는데 휴지로 집어서 죽이라는 지호의 조언을 나는 도저히 들을 수 없었다. 쟤를 어떻게 집어... 딱딱한 종이로 들어올려서 변기에 버리려고 했는데 힘이 없어진 바퀴는 쉽게 들것에 올라와주지 않았고 이 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. 너무 무섭고 징그러웠다. 울며불며 5분이 지났고 종이로는 도저히 안돼서 집히긴 한건지 감이 안올정도로 휴지를 칭칭칭칭칭칭칭 감아 변기에 빠트려 사태를 끝낼 수 있었다.
하...정말 너무 두렵다. 오늘 잠에 들 수 있을까? 또 나오면 어떡하지. 이걸 쓰는 도중에도 날파리 한 마리 지나가자마자 거의 경기를 일으켰다. 벌레가 너무 싫다. 이젠 정말 고층에 살고 싶다. 물론 고층도 바퀴가 나올 수 있다는건 알지만 확률이라도 줄이고 싶다.
겁이 많은 나에겐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싸움이다. 정말 괴로운 밤이다.